의료법인 의료기관 사무장병원 판단 기준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따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의료법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 등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아래 사안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허가를 받아 의료기관을 개설하자 검사가 의료법을 위반한 사무장병원으로 판단해 기소한 사안으로, 1심과 2심 법원은 피고인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이 파기 환송한 사례다.
비의료인, 의료법인형 사무장병원 개설 기소 사건
의사 자격이 없는 피고인 박 씨는 C 의료재단 C 요양병원 이사장 J로부터 C 요양병원을 인수하라는 제안을 받고, 의료법인을 설립한 후 요양병원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피고인과 피고인의 지인 K는 각각 1억 5천만 원씩 합계 3억 원을 의료법인의 보통재산으로 기부하는 것처럼 가장해 광역자치단체로부터 P 의료재단 설립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C 요양병원 이사장 J는 C 요양병원의 토지와 건물을 새로 설립할 P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으로 증여했다.
피고인은 J로부터 C 의료재단 C 요양병원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병원의 하나은행 대출금 17억 5천만 원을 승계해 대출금을 갚고, J에게 공로금 1억 2,500만 원, 계약금 5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양도, 양수 계약을 체결했다.
P 의료재단은 C 요양병원의 명칭을 P 요양병원으로 바꿔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았다.
그 후 피고인은 P 의료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해 직접 의사 등을 고용해 의료행위를 하도록 했다.
또 피고인은 하나은행 대출금 17억 5천만 원의 채무자를 P 의료법인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하나은행은 P 요양병원 건물의 시세 하락과 보증인 변경을 이유로 대출금의 일부 변제를 요구했다. 이에 피고인은 3억 7천만 원을 변제했다.
그 뒤 J가 선임한 기존의 이사들은 모두 사임했고, 피고인이 선임한 4명이 새로 이사로 취임했다.
그러자 검사는 피고인이 의사 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해 불법 의료기관인 사무장병원을 개설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또 검사는 피고인이 불법 의료기관인 P 요양병원을 설립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6년간 137억여 원을 송금 받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사기죄도 적용했다.
피고인의 주장
피고인은 검사의 기소에 대해 적법 절차를 거쳐 의료법인을 개설했고, 의료법인 운영과 관련해 중요 사항을 이사회에서 결정했으며, 의료법인을 운영하면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료법인을 사유화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비의료인의 사무장병원 개설 사건의 쟁점
이번 사건의 쟁점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개설된 의료기관에 관여하는 경우 의료기관 개설 자격 위반이 된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이다.
이 사건에 대해 1심, 2심 법원은 피고인의 의료법 위반, 사기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심 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징역 2년 6월을,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2심 법원의 판결
다음은 2심 법원의 판결 이유를 요약한 것이다.
가. 피고인의 의료법인 설립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는지
피고인과 피고인의 지인 K는 각각 1억 5천만 원을 P 의료법인의 보통재산으로 기부해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피고인은 자신의 예금계좌에 1억 5천만 원을 입금해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그다음 날 1억 5천만 원을 출금해 K 명의 예금계좌에 입금해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1억 5천만 원을 다시 출금했다.
그럼에도 피고인과 K는 2장의 예금잔액증명서를 도청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3억 원을 기부하는 것처럼 속였다.
2심 법원은 “주무관청이 피고인의 이런 가장행위를 알았다면 결코 의료법인 설립허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3억 원을 기부하는 것처럼 가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1억 5천만 원을 출금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부 의료법인의 대출금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했고, 오히려 피고인과 K는 의료법인의 대출금 채무 3억 7천만 원을 추가 변제하기까지 해 개인적인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은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출금해 K에게 일부 돈을 돌려주는 등으로 사용했고, 의료법인의 대출금 채무 1억 5천만 원을 변제할 무렵에는 돈이 부족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차용해 대출금 채무를 변제했다”라고 지적했다.
나. 피고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했는지
2심 법원은 피고인이 의료법인을 애초에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했다고 판단했다.
의료법인은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할 수 없으며, 설립자나 병원의 구성원 등에게 이익을 분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피고인은 P 의료법인 이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매월 약 1,300만 원의 급여를 받았고, 자신의 처 OH를 이사로 등재해 약 900만 원의 월급을 지급했다.
2심 법원은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급여의 범위를 넘는 이익의 추구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피고인은 K의 계좌에서 C 의료재단의 계좌로 양수도 계약금 5천만 원을 지급했고, 하나은행 대출금 일부를 변제하기 위해 K의 장인으로부터 5,900만 원을, 다시 K로부터 8천만 원을 빌렸다.
피고인은 K로부터 여러 차례 자금을 조달한 후 그를 사무국장으로 임명해 매월 약 770만 원의 급여를 지급했고, 그의 처인 L을 이사로 선임해 약 900만 원의 월급을 주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는 K가 법인 설립 과정에서 투자한 돈에 대한 대가로 수익을 분배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고, 이와 달리 매달 약 1,7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을 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런 사정을 종합해 피고인이 영리를 추구해 P 의료법인을 운영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다. 의료법인 이사회, 이사 및 감사가 정상적으로 활동했는지
아울러 법원은 P 의료법인 이사나 감사가 정상적으로 활동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요 사항이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결정되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판단했다.
P 의료법인 K 이사는 구급차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피고인의 부탁으로 이사로 등재되었고, 이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하거나 연임 결정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K 감사는 P 요양병원의 간판 공사를 하다가 알게 된 피고인의 부탁으로 감사를 맡게 되었고, 감사를 하면서 지출 전표 등을 재무제표와 대조하는 작업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세무사가 작성한 재무제표를 훑어보는 방식으로 감사를 했다고 진술했다.
라. 결론
2심 법원은 “피고인이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가진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해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인 것처럼 가장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비의료인인 피고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경우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2심 법원으로 환송했다. 다음은 대법원 판결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 충원 및 관리, 개설신고, 의료법 시행, 필요한 자금 조달, 그 운영 성과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했는지를 기준으로 사무장병원을 판단해 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기존의 주도성 법리를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 개설 자격 위반 판단에 그대로 적용하면 비의료인에게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불명확해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의료법상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에 필요한 자금 전부 또는 대부분을 의료법인에 출연하는 것이 허용되고, 의료법인의 이사 등의 지위에서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 내지 업무 집행에 참여하는 것도 허용되기 때문에 주도성 법리와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위반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도성 법리에서 벗어나 비의료인이 외형상 형태만 갖추고,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하게 의료기관을 개설 및 운영한 것처럼 가장했다는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의료기관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는지는 아래 둘 중의 하나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중 하나는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재산을 출연하지 않아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증거다.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 및 운영할 시설과 자금이 없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의 외형만을 갖추기 위해 설립하고, 그와 같이 형식만을 갖춘 의료법인을 설립한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의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을 주도했다면 사무장병원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하나는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사정이다.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지배하면서 의료기관 운영수익 등을 상당한 기간 동안 부당하게 유출하는 등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한 경우라면 의료법인의 규범적 본질이 유지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법원은 의료법인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한 후 시도지사의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받으면서 상당한 기간 동안 의료기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해 왔다면 그 설립 과정에 다소의 미비점이 있었다거나 운영 과정에서 일시적의 의료법인의 재산을 유출하는 횡령, 배임 등의 위법 행위가 존재했다는 사정만으로 의료법인의 규범적 본질을 부정해 의료법인이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을 위한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의료법인의 규범적 본질이 부정될 정도에 이르러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을 위한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관점에서 피고인이 개설 자격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 및 운영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심리와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대법원은 피고인이 P 의료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해 의료기관의 시설과 인력의 충원 및 관리, 필요한 자금의 조달 등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고 해서 의료기관을 사무장병원으로 운영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실체를 갖추지 못한 의료법인을 악용한 경우 또는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한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면 사무장병원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보통재산 3억 원을 출연한 것처럼 가장했지만 기본재산인 의료법인 토지와 건물은 정상적으로 출연되었고, 감정평가액은 약 32억 원이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출연을 가장한 부분은 기본재산이 아닌 보통재산으로 의료기관의 시설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고, 전체 출연 가액의 10% 정도여서 의료법인의 설립허가와 의료기관 운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피고인이 의료법인 설립 당시 의료기관 운영자금 용도의 보통재산을 출연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후 의료기관 운영자금이나 의료법인 채무 변제자금을 직접 조달했으므로 운영자금 용도의 보통재산을 실질적으로 출연했다고 평가할 여지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피고인과 사무국장 K, 피고인 아내 OH, 사무국장의 처 등이 비교적 고액의 급여를 수령했다는 점에서 의료법인의 재산이 피고인 등에게 부당하게 유출되었다고 평가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사장, 사무국장, 행정직 직원, 홍보부장 등으로 근무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한 이후 비교적 고액의 급여를 수령했던 것으로 보이고, 의료법인의 규모와 수익 증대 및 근무경력 등이 고려되어 급여가 인상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P 의료법인의 규모 및 수익은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의료법인의 규모와 수익 증대에 관한 공로 내지 장기간 근무경력 등을 인정받아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급여가 인상되었던 것이라면 고액의 급여가 일시적으로 지급되었다는 단편적인 사정만으로 의료법인의 재산이 부당하게 피고인 등에게 유출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인이 재산 유출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된 기간, 재산이 유출된 정도, 기간, 경위, 이사회 결의 등 정당한 절차나 적정한 회계 처리 절차가 있었는지 등이 종합적으로 심리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2심 법원은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에 따른 의료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라며 의료법 위반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글 번호: 451번, 1807번. 의료법인 사무장병원 사건 판결문이 필요하신 분은 아래 설명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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