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기자는 10여명의 암환자들이 심평원 전주지원을 항의 방문하는 자리에 동행했다.
이들은 요양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 등을 받아왔는데 심평원이 굳이 입원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요양병원이 청구한 입원진료비 전액을 삭감하자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암이 재발해 수술을 앞두고 있는 환자도 있었고,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집에서 밥을 해먹어가며 통원치료를 할 수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은 입원이 절박했다.
아니 꼭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학병원, 일반 급성기병원에서 입원이 거절된 경험이 있는데, 그 이유가 암환자를 입원시켜봐야 돈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다시한번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읍소하고, 안되면 드러누울 작정으로 심평원 전주지원을 찾았다.
심평원 전주지원 측은 광주지원, 대전지원과 함께 요양병원 입원 암환자에 대해 세가지 유형별 심사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들로 구성된 심평원 심사위원들이 심사기준 마련에 참여했다고 한다.
심사기준은 △암치료가 종결된 환자는 전액 삭감 △항암치료, 방사선치료중인 환자는 3일 입원하면 충분하지만 넉넉히 1주일 인정 △재발 또는 전이 환자, 말기환자는 전액 인정 등이었다.
그러면서 전주지원 측은 “암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20여 가지 비급여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런 건 건강보험에서 인정하는 표준치료법도 아니고, 대학병원 교수들은 이런 치료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비급여치료가 실손보험과 관련된 게 많더라”고 단언했다. 입원하지 않아도 될 상황인데도 실손보험금을 타기 위해 입원해 환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민간보험사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심평원이 전액 삭감한 암환자들은 암 치료가 종결돼 더 이상 입원이 불필요한 것일까?
B씨는 현재 난소암 4기다. 대수술을 받고 남편과 함께 6개월간 펜션에 머물면서 6번 항암치료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남편 휴직이 끝나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다시 집으로 들어갔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 보니 재발했다.
B씨는 또다시 항암치료를 6번 받았는데 체력이 완전 고갈돼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몸을 추슬렀다.
그는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조금씩 몸이 회복되기 시작해 항암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고, CT 촬영 결과 암 덩어리가 조금 줄었다고 해서 좀 더 치료를 받으면 집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3월 요양병원으로부터 자신의 입원진료비가 통삭감돼 더 이상 입원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B씨는 퇴원한 뒤 남편과 함께 심평원 전주지원에 가서 자신이 왜 전액삭감 대상인지 이야기해 달라고 했지만 납득할 만한 답을 듣지 못했고, 심평원 측은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되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B씨는 “어느 병원에 가면 되는지 추천해 달라, 지금 항암중이어서 체력이 안되는데 어떻게 통원치료를 하느냐”고 따졌고, 해당 요양병원이 이의신청하면 검토해 보겠다는 심평원의 답변을 믿고 3개월을 기다렸다.
그 사이 B씨는 대학병원으로부터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다음 달로 수술 날짜를 잡은 뒤 자신이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 입원 문의를 했더니 이의신청이 기각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다음 달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높여야 하는데 집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서 “수술이 잘 되더라도 돌봐줄 사람도 없고, 집에서 항암치료 받을 생각을 하니 심평원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토로했다.
B씨는 “의사가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심평원이 무슨 권한으로, 환자 상태가 어떤지 보지도 않고 통삭감 시키느냐”면서 “요양병원이 이의신청을 하면서 항암치료중이라는 소견서까지 보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눈물을 보였다.
"다시 요양병원 입원하게 해 달라"
폐암 4기인 K씨도 지난 달 심평원의 통삭감 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2014년 폐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한 뒤 요양병원에 입원했지만 뇌로 전이되면서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부종과 불면증, 탈모, 염증, 손발 저림 등 항암 부작용으로 하루하루가 끔찍한 고통이었다.
K씨는 “나도 몇 년간 요양병원에 있을 줄 몰랐고, 수술하면 금방 낫는 줄 알았다”면서 “4년간 이루 말할 수 없는 항암 부작용과 싸우며 견딜 수 있었던 건 요양병원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심평원은 항암 끝나고 며칠 입원해 있다가 퇴원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암에 한번 걸려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심평원이 뭐하는 곳인지, 삭감이 뭔지 몰랐는데 그렇게 무서운 곳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K씨는 “아직 항암이 끝난 것도 아니고, 회복되면 나가지 말라고 해도 퇴원할 텐데 재입원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서 “빨리 퇴원해서 자식들 밥도 해주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K씨와 마찬가지로 폐암으로 투병중인데, 그 역시 요양병원 입원진료비가 통삭감돼 다시 입원할 수 없는 상태다.
A씨는 “수술 후 편마비가 오는 바람에 냉장고 음식조차 꺼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처지”라면서 “집에 있자니 가족들한테 짐이 된 것 같아 미안하고 몸은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삭감한 이유가 뭔지 너무 궁금하고 답답해 원주 심평원 본원에 전화했더니 그건 병원의 횡포라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심평원이 돈을 안주는데 어느 요양병원이 계속 입원시켜주겠느냐고 따졌다”고 덧붙였다.
A씨는 통원치료를 하라는 것 역시 말이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남편이 야간근무할 때는 그나마 통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주간근무 주간에는 누가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먹여주고, 케어해 주겠느냐”며 “통원치료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실제 가능한지 환자들 상황을 좀 보라”고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요양병원에서 다시 면역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면서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보험공단의 '산정특례' 홍보 브로슈어 일부
구강암에 걸린 J씨는 기자에게 건강보험공단의 ‘중증질환 산정특례 제도’ 홍보브로슈어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진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질환, 중증화상)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중증질환 및 관련 합병증 치료시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진료비를 경감해 드리는 ’본인부담금 산정특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J씨는 “암의 특례기간은 5년, 본인부담률은 5%인데 암환자에게 있어 산정특례는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E씨는 최근 한국암재활협회가 마련한 200만 암환자들의 생명과 건강권 수호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격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는 “심평원은 국민이 양질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복지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면서 “암환자들의 상태를 소상히 알아야 대책이 나올텐데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칼질을 하고 있다”고 못 박았다.
D씨는 지난해 유방암 수술을 한 뒤 요양병원에 입원해 대학병원으로 항암, 방사선 치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월에 입원진료비가 전액삭감됐다는 요양병원의 설명을 듣고 부득이 퇴원했다.
D씨는 “지난해 방사선 치료를 할 때는 손톱, 발톱 다 빠지고, 살짝 넘어졌는데 갈비뼈가 부러지더라”면서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상태가 조금 좋아지고 있었는데 심평원이 강제 퇴원하라는 바람에 집에서 버티고 있지만 잠도 못자고, 면역력도 점점 떨어져 불안하다”고 했다.
D씨 역시 도저히 집에서 버틸 수 없어 심평원 지원을 찾아가 왜 입원진료비를 통삭감했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D씨는 “말이 안통하고, 다른 병원 가라고 하길래 암환자를 받아주는 일반병원이 있으면 제발 소개해 달라고 사정했다”면서 “5년만 더 살면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눈감을 수 있는데 요양병원에서는 심평원 때문에 입원이 안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심평원의 압박에 못이겨 요양병원에서 퇴원 당한 암환자들이 최근 다시 입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심평원은 다음 날 아래와 같은 설명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환자의 입원분류군은 심평원이 아니라 해당 병원의 의료진이 환자상태 등을 평가해 결정하고, 그 평가결과에 따라 의료최고도부터 신체기능저하군까지 모두 입원할 수 있으며, 암환자를 신체기능저하군으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입원료 심사 조정은 요양병원의 청구경향, 진료내역, 환자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입원‘에 한해 일부 적용했다’
‘최근까지의 암환자 청구형태와는 다르게 지나친 장기입원을 했고, 외출․외박 등을 자주 하거나, 일상생활 정도를 평가하는 ADL(일상생활수행능력) 검사 등에서 입원을 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나타났다’
‘의학적 견지에서 입원을 해서 치료해야 할 만한 치료내역이 없는 점 등을 확인했고, 이에 대해 장기입원에 대해 자체 시정토록 3회에 걸쳐 사전 안내했다’
이에 대해 J씨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출처 : 의료&복지뉴스(http://www.mediwelfa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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