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성폭력 사건 유무죄 판단 기준
성폭력 사건에서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고, 혐의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증거가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 ①피해자의 진술 중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인지 ②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직에 비춰 합리적이고 진술 자체로 모순되거나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나 사정과 모순되지는 않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8도2614 판결).
또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춰 합리적인지 여부는 개별적, 구체적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기초해 판단해야 한다.
그런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런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섣불리 경험칙에 어긋난다거나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9도4047 판결).
강제추행 사건의 개요
70세인 피고인은 채팅 어플을 통해 30세 피해자 여성과 채팅을 주고 받다가 만나게 되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만나 “내가 예전에 국가대표 감독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여기는 너무 춥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테니 모텔에 들어가자”고 말하고 피해자를 모텔로 데리고 들어갔다.
모델에서 강제로 추행
피고인은 오후 7시 경 모텔에서 일방적으로 생활비로 보태라며 피해자의 가방에 50만원을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가슴 한 번 만져보자”고 말하면서 피해자를 침대에 눕혀 어깨를 누르고 상의를 벗긴 후 피해자의 귀와 가슴 등을 빨았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발버둥을 치고 저항하자 피해자의 몸을 누르고, 피해자의 레깅스와 팬티를 벗긴 후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내린 뒤 피해자의 성기에 비비는 등 강제로 추행했다.
검사, 피고인 강제추행 기소
그러자 피해자는 피고인을 강제추행으로 고소했고, 검사는 피고인을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2심 법원의 판단(피고인 무죄)
2심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보아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2심 판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
(1) 피고인의 추행 행태나 성기 삽입 시도 등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
(2) 피해자는 화장실에 간 횟수에 관해 진술을 번복했다.
나.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1) 피해자는 피고인을 처음 만났음에도 별다른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고 피고인의 권유에 따라 모텔로 함께 들어갔다.
(2) 피해자가 돈을 받는 과정에서 그리 강한 거부의사를 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3) 피해자는 모텔을 나서기 전 피고인의 얼굴에 묻은 화장품, 립스틱을 닦아주었다.
뜻밖의 강제추행을 당한 직후 극도의 혐오감으로 인해 피고인의 모습만 보고도 토할 것 같고 그저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고 하면서도 모텔을 나간 이후 타인의 반응까지 고려해 피고인의 얼굴을 닦아준 점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4) 피해자는 모텔에서 강제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서도 즉시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텔을 빠져나오려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또 모텔에서 나와 피고인의 차량을 같이 타고 피해자 차량이 주차된 장소로 돌아왔다.
대법원의 판단(2심 판결 파기환송)
2심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
(1) 피해자의 주요한 부분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 2심 법원이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한 부분은 구체적인 묘사의 표현이 다소 다른 것일 뿐 그 내용이 일관되지 않다고 평가하기 어렵고, 번복되었다고 지적한 부분도 매우 지엽적일 뿐이다.
(2) 2심 법원이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라고 판단한 피해자의 태도는 아래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또한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라는 사정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통념에 따라’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합리성을 부정한 것이다.
① 피해자는 채팅 어플을 통해 피고인(당시 아이디에 표시된 나이는 62세)을 알게 되어 서로의 프로필을 보는 등 관심을 주고받던 중 나이가 63세로 된 아이디를 만들어 피고인에게 먼저 쪽지를 보냈다.
쪽지 내용은 ‘나이 차이 때문에 쪽지 보내는 게 안 돼서 다른 걸로 가입했다. 늘 와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꼭 좋은 인연 만나시길 바란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너무 반갑게 받았다’는 취지로 답장을 보낸 후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보고 전화 통화를 하자고 제안했으며, 자신이 연예인과 친분이 있고 재계 인사들과도 잘 안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상의하고, 좋은 관계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피해자는 기뻐하면서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와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동경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고, 피고인은 쪽지로 대화를 나눈 지 4일 만에 피해자에게 만나서 식사라도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② 피해자는 ‘피고인이 춥다고 모텔에 들어가자고 했고,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해서 나이가 많아서 추위를 많이 타나보다 하는 생각에서 피고인의 제안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나이 차이, 피해자의 심리 상태 등에 비춰 이런 행동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이와 같은 경위로 피해자가 모텔에 들어가는 데 동의하고 안아보는 걸 허락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정을 그 이상의 성적 접촉은 원하지 않았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③ 피해자는 피고인이 50만 원을 주려고 하자 한두 차례 거절을 했는데 피해자가 더 이상의 강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 이후 피고인의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사실과 배치되는 사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➃ 피해자는 피해상황에 대해, 너무 깜짝 놀라고 피고인의 힘이 세서 반항하기 어려웠고, 계속 발버둥 치면서 저항하다가 화장실로 도망갔다고 진술했다.
또 피고인이 “내가 널 사랑해서 너가 원하지 않아서 하지 않은 거다. 너가 원할 때 관계를 가지겠다”고 말해 너무 놀라서 바들바들 떨렸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⑤ 피해자는 이후 피고인의 차량 안에서 오줌을 지렸고, 집에 돌아와서는 온몸을 락스로 샤워했다고 진술했다.
또 피고인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고, 다음 날 오전 2시 20분 친구에게 ‘괴롭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고 이후 자살 시도를 했다.
⑥ 이와 같이 피해자는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컸던 피고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심한 추행을 당해 극도로 당황하고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즉시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홀로 모텔을 빠져나오지 않은 채 피고인의 차를 타고 자신의 차가 있던 곳까지 돌아왔다고 해서 그것이 매우 이례적이라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3)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심(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 글 번호: 3451번
2019.07.23 - [안기자 의료판례] - 성적 수치심, 학력차별, 직장성희롱
성적 수치심, 학력차별, 직장성희롱
[직장 성희롱 시리즈 4] 성희롱이란? 1. 직위를 이용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2. 어떠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당사자 간의 직위 및 업무 관련성, 언동의 사
dha826.tistory.com
'의료외 판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공사 마일리지 유효기간 후 소멸 정당할까 (0) | 2024.12.05 |
---|---|
반려동물 수술 전 동물병원 수의사의 설명의무 (0) | 2022.09.23 |
장해급여청구권 소멸시효 (0) | 2020.08.01 |
반려견 목줄 안한 견주 벌금, 3788만원 손해배상 (0) | 2020.07.15 |
여직원 허벅지 쓰다듬은 강제추행죄 사건 (0) | 2020.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