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했다.
재판관 4(헌법불합치): 3(단순위헌): 2(합헌)의 의견
또 위 조항들을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2013. 11. 1.경부터 2015. 7. 3.경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였다는 공소사실(업무상승낙낙태) 등으로 기소되었다.
청구인은 제심 재판 계속중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을 하였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2017. 2. 8.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심판 대상 조항
형법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관련조항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 수술의 허용 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결정주문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 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의 헌법불합치 의견
1.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판단
가. 제한되는 기본권
헌법 제0조 제1문이 보호하는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일반적 인격권이 보장되고, 여기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파생된다.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다.
자기결정권에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여기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임신 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나.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
(1) 입법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태아는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낙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다.
(2)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하여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즉,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 가능 여부를 파악하며, 국가의 임신·출산·육아 지원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만약 낙태하겠다고 결정한 경우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필요한 기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이하 착상시부터 이 시기까지 ‘결정가능기간’이라 한다)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 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하가 임신한 여성의 임신 종결 여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하여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
낙태수술 과정에서 의료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여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 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은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부담, 출산 과정에수반 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 당할 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고통까지도 겪을 것을 강제당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 가능 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또한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2.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한 판단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 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하여 낙태 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 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
3. 소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 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하여 각각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
입법자는 위 조항들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낙태의 형사처벌에 대한 규율을 형성함에 있어서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함하여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 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 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 앞서 우리 재판소가 설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재량을 가진다.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각각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다만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적용을 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입법자는 늦어도 2020. 12. 31.까지는 개선입법을 이행하여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 조항들은 2021. 1. 1.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재판관 이석태, 재판관 이은애, 재판관 김기영의 단순위헌 의견
우리는 헌법불합치 의견이 지적하는 기간과 상황에서의 낙태까지도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대하여 헌법불합치의견과 견해를 같이한다.
다만 우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른바 ‘임신 제1삼분기first trimester, 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 자기낙태죄 조항 및 의사낙태죄 조항(이하 ‘심판대상조항들’이라 한다)에 대하여 단순위헌결정을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헌법불합치의견과 견해를 달리 한다.
1. 임신 제1삼분기에서의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자신의 몸을 임신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 그 요건을 충족하는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가불가피한 사람’의 지위를 부여하여 법적 책임을 면제할 뿐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도 보장하지도 않는다.
이는 사실상 그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된다고 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의 유지 또는 종결에 관하여 한 전인격적인 결정으로서의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원칙적으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되어야 한다 . 다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제한될 수 있다.
나.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제한
(1)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제한
태아가 과연 생명권에 대한 기본권 주체가 되는가에 관계없이 태아는 그 자체로 생명으로서 점차 성장하여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생명을 존중하는 헌법의 규범적․객관적 가치 질서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선언한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
다만 국가가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을 추구함에 있어서도 생명의 연속적 발달과정에 대하여 생명이라는 공통요소만을 이유로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정도나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
태아는 임신기간의 경과에 따라 점차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달되어 간다.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현재 의료계에 따르면 약 임신 22주 내외)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하여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는 이 시기 이후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
(2) 여성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을 위한 제한
낙태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침습행위로서 여성의 신체와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의 낙태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줄이는 것도 실질적이고 중요한 과제이다
일반적으로 임신주수가 증가할수록 임신한 여성이 낙태로 사망할 위험이 높아진다.
임신 제1삼분기에 적절하게 수행된 비의료적 이유에 의한 낙태는 만삭분만보다도 안전하고, 낙태로 인한 모성 사망의 상대적 위험도는 임신 8주 이후 각각 2주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른바 ‘안전한 낙태’를 위해서는 임신 제1삼분기에 잘 훈련된 전문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낙태가 시행되고, 낙태 전후로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이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낙태에 관한 정보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제공될 필요도 있다.
반면 임신 제1삼 분기를 경과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낙태는 그 이전에 비하여 수술방법이 더 복잡해지고, 수술과정에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어 임신한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는 태아의 생명 보호 및 임신한 여성의 생명․건강보호라는 공익이 더욱 고려될 수 있다.
(3)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기간 부여의 한계
한편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일정기간 중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할 경우 그 기간은 숙고와 결정에 필요한 만큼 보장되어야 하는 한편 그 숙고와 결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일정한 한계가 지워져야 한다.
다. 심판대상 조항들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자기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기여하는 정도가 크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그동안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실제 가동 여부가 좌우되거나, 본래의 목적과 무관하게 상대 남성 또는 주변인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임신한 여성으로 하여금 임신 유지에 관하여 필요한 사회적 논의나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임신의 종결을 결정하여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낙태를 금지하고 이를 형사처벌하는 방법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충분히 기여해 왔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낙태에 대한 전면적, 일률적 금지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게 하고, 음성적인 낙태를 할 수밖에 없어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돌봄 등도 제공받기 어렵게 하며, 낙태의 비용도 증가시킨다.
또한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산부인과 전문의 등 의료인들도 그 수련과정에서 낙태 수술법을 충분히 훈련받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음성적 낙태로 인하여 의료사고나 후유증의 발생빈도를 증가시킨다.
이처럼 낙태에 대한 전면적, 일률적 금지는 임신한 여성의 생명 건강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한 것으로서,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간 내의 낙태를 허용할지 여부와 특정한 사유에 따른 낙태를 허용할지 여부의 문제가 결합하는 경우 낙태의 문제는 다시금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가 있는가의 문제로 수렴한다.
임신한 여성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간 내에도 국가가 낙태를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여 줄 뿐이라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인 임신 제1삼분기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그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터 잡아 형성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숙고한 뒤 낙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원칙에 위배되고 자기낙태죄 조항을 전제로 한 의사낙태죄 조항도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
임신 제1삼분기의 낙태마저도 전면적, 0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하여 제한받는 사익이 자기낙태죄 조항이 달성하는 공익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심판 대상 조항들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심판 대상 조항들은 임신 제1삼분기에 이루어지는 안전한 낙태에 대하여 조차 일률적,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2. 단순위헌결정의 당위성
자유권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하여 기본권의 제한 그 자체는 합헌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지나치기 때문에 위헌인 경우에도 헌법불합치결정을 해야 한다면, 법률이 위헌인 경우에는 무효로 선언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그에 기초한 결정 형식으로서 위헌결정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그동안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 조항들이 예방하는 효과가 제한적이고 형벌조항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언하여 심판대상 조항들에 따른 기소를 일단 가능하게 한 뒤 사후입법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은 형벌규정에 대한 위헌결정의 효력이 소급하도록 한 입법자의 취지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그 규율의 공백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으로서 가혹하다.
끝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심판대상 조항들 중 적어도 임신 제1삼분기에 이루어진 낙태에 대하여 처벌하는 부분은 그 위헌성이 명확하여 처벌의 범위가 불확실하다고 볼 수 없고, 또한 임신 제1삼분기에 이루어지는 낙태의 처벌 여부에 대하여는 입법자의 입법재량이 인정될 여지도 없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심판 대상 조항들에 대하여 이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결론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단순위헌의견이 3인이고,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이 4인이므로, 단순위헌의견에 헌법불합치 의견을 합산하면 법률의 위헌결정을 함에 필요한 심판정족수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위 조항들에 대하여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입법자가 2020. 12. 31. 이전에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위 조항들을 계속적용하되, 만일 위 일자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위 조항들은 2021. 1. 1.부터 그 효력을 상실한다.
판례번호: 2017헌바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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