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루푸스·다발성경화증 환자의 스테로이드 복용을 중단하고, 한약 복용만 고집하다가 고열, 시력 소실, 혼수상태에 빠졌음에도 전원조치 안한 과실.
사건: 손해배상
판결: 1심 원고 일부 승, 2심 원고 일부 승, 대법원 상고기각
사건의 개요
환자는 발열과 소변을 볼 수 없는 증상 및 하지무력, 의식불명 등의 증상으로 대학병원에서 ‘중추신경계홍반성 루푸스, 횡단성 척수염, 시신경염, 급성 위염, 신경인성 방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환자는 대학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의 진단명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루푸스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2개 질환의 증상과 검사소견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대학병원에서 스테로이드제 복용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발열, 구토, 후두부 강직, 양쪽 눈의 시력 감퇴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또 10일이 지나서는 호흡 곤란, 양쪽 눈의 시력 소실, 혼수 등으로 인하여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결국 다시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줄곧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였다.
피고는 모대학교 한의학과 교수 겸 한방병원의 1내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환자 치료를 부탁받게 되었다.
당시 환자의 건강상태는 루푸스 및 다발성경화증으로 인한 신경이상으로 다리근육이 위축되어 자체 보행 및 기립이 불가능하였고, 대소변이 자기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저류현상이 있었다.
이와 함께 우안 시력이 소실되었고, 속이 메스꺼워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었고 좌안 시력은 거의 정상이어서 글을 쓰고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었다.
피고는 환자의 증상을 진찰한 뒤 주증상을 몸의 모든 기능이 축 늘어져서 제기능을 못하는 위증으로, 그와 같은 위증의 주원인이 비위기허(위장과 비장의 기능이 허약한 것), 위하수(위가 처져 기능이 떨어지는 것) 등의 소화기능의 장애로 판단했다.
영양분이 신체 각 부분에 전달되지 아니하여 결국 몸 전체 부위가 늘어지고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당시 피고는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루푸스 및 다발성경화증 환자에 대한 임상경험이 없었다.
아울러 루푸스라는 병에 대하여 항체가 자발적으로 생성되어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면역기전 질환으로 완치하기 어려운 난치병에 해당하고 한방에서는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각 장기에 염증이 생긴다 하여 전신성 홍반 낭창이라고 부른다는 정도의 지식만 있었다.
심지어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의학적 지식도 없었다.
피고는 위와 같은 판단 아래 비장과 위장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처음엔 스테로이드제 투약을 병행하면서 인삼, 산약(마), 부자, 감초 등이 주성분으로서 비위기능을 회복하는 약인 보원탕을 복용케 하였다.
그리고 약 한달이 지나도록 한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스테로이드제가 한약의 흡수를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환자에게 스테로이드제를 끊어볼 것을 제의하였다.
원고는 스테로이드제 복용 중단에 대해 난색을 표시하였으나, 피고가 복용 중단에 따른 부작용에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고, 또 끊었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즉시 다시 복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여 결국 복용을 중단하였다.
피고는 수삼붕어탕, 가감해기탕을 복용토록 하였다.
그러나 환자는 갑자기 고열, 해소와 두통 증상이 나타났고, 얼마 뒤 좌안 시력이 소실되었으며, 얼마 뒤에는 입이 돌아가고, 항문이 벌어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급기야 혼수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피고는 위와 같은 증상이 감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한방적 치료만을 계속해 오다가 혼수상태에 이르러서야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대학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권유하여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되었다.
환자는 신경과 병동에 입원하여 스테로이드제 투여 치료를 받은 후 의식상태와 상지근력의 일시 호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사실상 실명한 채로 오른쪽 팔만 겨우 들어 올릴 수 있을 뿐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 감각이 없었으며, 대뇌와 뇌간에 다발성 뇌손상의 소견을 보였다.
그로 인하여 의식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결국 사망하였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탈수초성 질환의 한 종류로 임상적으로 재발과 완화를 반복하는 질환.
다발성 경화증은 중추신경계의 탈수초성 질환(demyelinating disease; 신경세포의 축삭을 둘러싸고 있는 절연물질인 수초가 탈락되는 질병) 중 가장 흔한 유형이며, 주로 젊은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병원 의학정보)
2심 법원의 판단
피고는 루푸스 및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없음은 물론 임상경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서서히 스테로이드제의 투여량을 줄이거나 투여 중단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함이 없이 일시에 그 복용을 중단시킨 과실이 있다.
환자는 스테로이드 복용 중단 이후 고열, 두통 증상이 나타나고 좌안 시력마저 소실되었으며 입이 돌아가고 항문이 벌어지며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급기야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피고는 즉시 스테로이드제를 재복용시키거나 전원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과실이 경합하여 이번 사건이 발생하였다 할 것이다.
피고의 주장
한약을 투약하였는데 약 한 달이 지나도록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스테로이드제나 면역억제제 등 여러 약이 한약의 흡수를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나름대로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확인한 결과, 양방에서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스테로이드제 복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도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루푸스 중증 환자에 대하여 중의 처방만으로 치료하거나 중의 처방과 스테로이드제 복용을 병용하여 치료한 임상사례가 많다.
법원의 판단
무릇 의사에게는 질병에 대한 검사 내지 치료방법의 선택에 있어 재량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스스로 합리적인 한계가 있고, 그 재량권의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과실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은 돌연히 복용을 중단시켜 생길 수 있는 위험한 부작용에 대해 면밀한 고려도 없이 일시에 그 복용을 중단시킨 것도 부적절하였으므로, 이는 의사로서의 재량권을 일탈한 과실 있는 의료행위라고 할 것이다.
더욱이 피고는 한의사로서 루푸스, 다발성경화증 및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사전 의료지식이 부족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치료를 맡은 위 피고가 양의에서 난치병에 해당하는 위 병에 대하여 치료를 시작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그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적절한 치료를 위한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였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한 시점에서 스테로이드제 복용 중단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한 것은 부적절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판례번호: 2심 563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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