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는 10월 22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과 왼편 감각이 없는 증상이 나타나 119 구조대의 도움으로 I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당시 응급실에는 신경과 레지던트 1년차 J가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김 씨는 2년 전 뇌경색 진단을 받았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J는 신경학적인 검사를 했는데 뇌경색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발견되지 않자 말초성 어지럼증으로 진단한 뒤 김씨와 보호자들에게 뇌경색 과거력이 있어 뇌 MRI 촬영이 필요한데 촬영기사가 퇴근하고 없어 당장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MRI 촬영을 하려면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니 MRI 촬영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할지 여부를 물었다. 이에 김씨와 그의 보호자들은 오후 10시 5분 경 그냥 병원 응급실에 남아 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자정을 넘길 무렵 김씨는 어지러움을 호소한데 이어 응급실 입원 다음날인 23일 오전 1시 30분경 왼편에 힘이 들어간다고 호소하자 J는 1시 40분경 다시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했다.
J는 7시 41분 경 뇌 MRI 촬영을 예약하도록 지시했는데 지시서 주의사항에는 급성 뇌경색(brain attack)이 기재되어 있었다.
11시 50분 뇌 MRI 촬영 결과에서는 뇌경색 소견이 확인되었고, 신경학적 검사에서 좌측 상하지 마비 및 좌측 상하지 감각이상이 나타나자 의료진은 결국 뇌졸중으로 판단했다.
J는 12시 16분 경 항응고제인 헤파린, 항혈소판제 등을 투여하는 등 뇌경색에 대한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었고, 좌측 상하지가 마비되고 감각이 소실된 상태로 퇴원했다.
김씨는 I병원의 과실로 인해 뇌경색을 치료할 기회를 상실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김씨의 과거 병력과 연령, 증상으로 볼 때 뇌경색을 의심할 만했고, 이를 확진하기 위해서는 뇌 MRI 촬영이 필수적이었는데 의사 J의 대처는 타당했을까?
J는 소송에서 "신경학적 검사 결과 뇌경색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없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야간 MRI 촬영이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할지 여부를 선택하도록 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J의 주장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었다.
우선 J는 신경학적 검사를 시행한 시각이 22일 오후 9시 30분 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간호기록지에는 보호자들이 전원하지 않고 I병원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한지 5분이 경과한 오후 10시 10분 경 담당 의사가 김씨를 검사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는 J는 신경학적 검사를 해 보지도 않고 환자 보호자들에게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지 여부를 물어본 게 된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담당 의사는 보호자들에게 환자의 당시 증세에 대해 제대로 된 의학적 검사 결과와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전원 여부를 선택하도록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당시 시행한 신경학적 검사 내역과 결과에 대해서도 의심을 숨기지 않았다.
재판부 "의사 과실로 발병 초기 뇌졸중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 상실"
김씨가 뇌경색 증세를 보였음에도 이학적 검사, 고위뇌기능검사, 뇌간 및 뇌신경검사, 운동기능검사, 감각기능검사 등에서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검사기록 작성 시점과 칸 사이에 기재한 방식 등에 비춰 볼 때 담당 의사가 위와 같이 세부적인 신경학적 검사를 모두 했는지, 그 결과가 모두 정상으로 나왔는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특히 23일 오전 6시 경 김씨의 좌측 마비상태가 계속되었다고 진료기록부에 기재되어 있고, J가 MRI 촬영 예약을 지시하면서 주의사항으로 ‘급성 뇌경색’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늦어도 23일 오전 6시 훨씬 이전부터 좌측 마비상태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야간에 MRI 촬영 인력을 갖추지 않은 병원으로서는 신속히 촬영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만연히 말초성 어지러움으로 보고, 발병 초기 치료 받을 기회를 놓치게 한 과실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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