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큐로니움은 근이완 작용을 일으키는 마취약제이며, 투여 후 약제의 효능이 지속되어 자발호흡이 어려워지고 기관내삽관이나 기관절개술이 완료될 때까지 환자의 호흡 보조가 어려울 수 있어 저산소증 위험성이 있다.
여기에다 기관내삽관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의료진으로서는 로큐로니움 투여 후 호흡곤란 상태에 빠질 것을 염두에 두고 근이완 길항제를 미리 구비해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하면 즉시 브리디온과 같은 근이완 길항제를 투여해야 한다.
아래 예시는 심경부 감염으로 인한 염증을 제거하기 위한 배농술에 앞서 마취유도를 하는 과정에서 서맥 증상이 발생하자 기관절개술을 실시한 뒤 수술을 끝냈지만 환자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한 사안이다.
수술 마취 후 호흡곤란으로 저산소성 뇌손상 발생 사례
A는 목의 통증,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발생해 H병원을 방문했다. 의료진은 경부 CT 검사를 한 결과 좌측 비인두(코인두) 공간과 후인두(후두인두) 공간에 다량의 농양으로 기포가 갑상연골 부위까지 아래로 퍼져있는 양상이었다.
이로 인해 기관이 우측으로 편위되어 기도가 부분적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그러자 의료진은 심경부 감염, 괴사성 근막염으로 진단한 후 당일 전신마취 아래 절개 및 배농수술을 했다.
당시 의료진은 진료기록부에 기관내삽관이 어렵다는 취지로 기재했다. 의료진은 수술 마취를 위해 고농도 산소를 투여한 뒤 펜토탈, 펜타닐, 근이완제 로큐로니움을 투여했다.
의료진은 기관내삽관을 통해 마취중 기도를 확보하려고 했지만 마취약제 투입 후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산소포화도와 맥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서맥증상을 보였다.
또 기도폐쇄 및 기관 편위 문제로 기관내삽관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자 미리 준비한대로 기관절개술을 실시했다.
의료진은 서맥 증상이 기관절개술 시행 도중 더욱 심해지자 아트로핀을 투여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뒤 기관절개술을 마쳤고, 맥박이 정상수치로 돌아오자 수술을 한 뒤 중환자실로 이송했다.
그런데 환자는 기관절개술이 완료될 때까지 저산소증으로 인해 뇌손상을 입었으며, 이로 인해 최소 의식 상태의 뇌손상 후유증이 영구적으로 남고, 100% 노동능력 상실이 예상되는 상태이다.
의료진이 수술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뇌손상이 발생했다면 의료진은 어떤 잘못을 한 것일까?
환자 측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그러자 환자 측은 H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환자 측은 의료진이 기관내삽관에 실패한 과실이 있고, 당시 환자가 기관내삽관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마취를 하기 전에 기관내삽관을 해야 함에도 마취유도 아래 기관내삽관을 실시해 저산소성 뇌손상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또 환자 측은 의료진이 기관내삽관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마취 유도 작용시간이 짧은 석시닐콜린 등을 투여했어야 함에도 작용시간이 긴 로큐로니움을 선택한 과실이 있으며, 근이완 길항제를 투여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단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H병원의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다음은 법원 판결 이유를 정리한 것이다.
(1) 의식이 있을 때 기관내삽관을 하지 않은 과실 여부
환자의 경우 기도의 부분적 폐쇄 등으로 기관내삽관에 실패할 위험이 높아 의식이 있을 때 기관내삽관을 하거나 기관지경을 이용해 기관삽관튜브를 삽관해 놓은 후 마취를 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식 하 기관내삽관은 매우 까다롭고 환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부종이 더 심해질 위험도 있어 이 경우 무조건 더 안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고, 필수적 상황이 아니면 많이 시행하지 않는 방법이다.
또 마취유도 하 기관내삽관을 하더라도 적절한 마취약제를 선택하면 저산소증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진이 마취유도 하 기관내삽관을 했다는 점만으로는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 기관내삽관에 실패한 것이 과실인지 여부
환자처럼 심경부 감염으로 수술할 경우 심경부 감염 자체나 부종이 기도를 좁혀 환기를 어렵게 하거나 개구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가 있어 기관내삽관이 어렵다.
당시 의료진은 기관내삽관 실패 위험성이 높은 상황을 고려해 기관절개술을 준비하고 있었고, 삽관 실패후 마스크 환기도 곤란하자 즉시 기관절개술을 시도했다.
이런 점 등을 종합하면 기관내삽관에 실패했다거나 실패 후 재시도 하지 않은 상황만으로는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3) 마취 유도 약제 선택의 과실 여부
이 사건 진료기록감정 의사는 석시닐콜린의 경우 로큐로니움보다는 작용지속시간이 짧아 석시닐콜린을 사용하면 자발호흡이 신속히 회복될 수 있고, 마취유도시 기관내삽관이 실패해도 자발호흡이 신속히 회복된다면 저산소성 뇌손상 위험이 줄어든다는 소견을 제시한 사실이 있다.
환자는 목에 심한 부종이 있는 상태에서 로큐로니움 투여 후 근이완이 되면서 기도폐쇄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이는 사정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석시닐콜린은 근이완 지속시간이 짧기는 하지만 심혈관계 과다 항진, 빈맥과 서맥 등의 부작용이 있어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마취약제이다.
로큐로니움 투여 이후 환자에게 호흡곤란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브리디온 등의 근이완 길항제를 투여하면 저산소증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의사의 진료방법 선택에 관한 판단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 한 선택한 결과가 좋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의료 과실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4) 근이완 길항제를 투여하지 않은 과실 여부
의료진은 마취 전부터 기관내삽관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음에도 근이완 지속시간이 비교적 긴 로큐로니움을 마취 약제로 선택했다.
이 경우 의료진으로서는 기관내삽관에 실패할 것에 대비해 자발호흡이 신속히 돌아올 수 있는 브리디온 등의 근이완 길항제를 미리 구비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이 환자에 대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이를 즉시 투여했다면 장애 발생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환자의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도 기도를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다소 시간이 소요되는 기관절개술을 실시하려고 했을 뿐 근이완 길항제 등을 투여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의료진은 로큐로니움 투여 이후 환자에 대한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브리디온과 같은 근이완 길항제를 즉시 투여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글 번호: 53033번. 이 사건 판결문이 필요하신 분은 아래 설명대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됩니다.
2017.10.19 - [안기자 의료판례] - 농양제거수술후 가래 제거를 하던 중 호흡곤란으로 저산소성 뇌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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