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심근경색과 심근효소 수치
K는 12월 8일 길에서 넘어진 뒤 편마비 증상을 보여 오후 10시 40분 C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의료진이 뇌졸중을 염두에 두고 치료하면서 2번의 심전도 검사와 2번의 심근효소 검사를 실시했다.
혈액검사 결과 심근효소 수치가 크게 증가했다.
8일 오후 11시 11분 심근효소 수치는 CK(IU/I) 수치 313(참고치 50~200), CK-MB(U/I) 수치 46(참고치 0~24), 미오글로빈(ng/ml) 수치 78.93(참고치 25~72)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인 9일 오전 4시 45분 검사에서는 CK 1056, CK-MB 52, 미오글로빈 1048로 크게 상승했다.
그런데 K는 9일 오전 7시 48분 심정지가 발생해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유가족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
그러자 환자의 유가족은 환자가 부정맥의 기왕력이 있었고, 급성 심근경색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있었음에도 C 병원이 관련 검사와 치료를 소홀히 해 환자가 사망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혈액검사 결과 심근효소 수치가 상승함에 따라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가능성을 의심해 추가적인 심근효소 수치 검사를 하거나 심전도 검사 등을 시행해 급성 심근경색으로 진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이런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유가족의 주장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환자의 심근효소 검사를 진행한 결과 CK, CK-MB 및 미오글로빈 수치가 참고치를 초과했고, 2번의 뇌 MRI 검사를 실시했지만 뇌경색 등의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의료진은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했을 당시 보호자로부터 환자에게 부정맥이 있다는 것을 들었고, 두 번의 심근효소검사 결과 기준치를 모두 크게 초과했지만 9일 오전 4시 45분 이후로는 추가적인 심근효소 검사, 심장초음파 검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 의료진 과실 불인정
이처럼 환자에게 급성 심근경색 의심 증상이 있었음에도 의료진이 검사 및 처치를 소홀히 한 정황이 확인되었지만 이 사건 1심, 2심 법원은 모두 유가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C 병원 의료진에게 의료 상 과실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가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트로포닌(Troponin)’ 수치 때문이었다.
심근경색이 발생해 심장 근육이 괴사 되기 시작하면 심장에 있는 효소가 혈액 속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혈액검사를 통해 심장효소 검사를 하게 된다.
심장효소 검사는 CK, CK-MB, 미오글로빈(Myoglobin), 트로포닌(Troponin) 수치를 보게 된다. CK-MB는 통증 발생 후 3~8시간 이내의 심근세포 손상을 반영한다.
미오글로빈은 심근 세포 손상 후 혈중 유출과 소실이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로포닌은 다른 장기에는 없는 단백이어서 이들이 혈액에서 발견되면 심장 근육에 손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심근효소는 심근에 특이적인 트로포닌 수치를 가장 우선적으로 본다.
환자의 트로포닌 수치는 12월 8일 오후 11시 11분 혈액검사 결과 0.003ng/mL 미만, 다음 날 오전 4시 45분 0.045ng/mL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심근효소 검사에서 모두 정상범위(참고치 0.000~0.100ng/mL) 안에 들었다.
1심, 2심 법원은 “트로포닌 수치는 심근 손상에 대한 민감도와 특이도가 매우 높아 심근경색 진단의 기본 자료로 사용된다”라면서 “트로포닌 수치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던 상황에서 의료진이 CK, CK-MB 및 미오글로빈 수치 상승 등을 근거로 급성 심근경색으로 진단했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유가족들은 환자의 트로포닌 수치가 참고치 안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총 CK에 대한 CK-MB 비율이 참고치 범위를 벗어난 이상 의료진이 급성 심근경색을 의심하고 심장초음파나 관상동맥조영술 등 급성 심근경색을 감별하기 위한 추가 검사를 시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도 기각했다.
CK-MB는 CK보다 심근 특이적이므로 총 CK에 대해 CK-MB가 차지하는 비중이 5% 이상일 때 감별검사 등을 시행한다.
그런데 두 차례에 걸친 심근효소 검사 결과 총 CK에 대한 CK-MB 비율은 12월 8일 오후 11시 11분 검사에서 14.7%, 12월 9일 오전 4시 45분 검사에서 4.92%로 크게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와 함께 법원은 심근효소 중 CK, CK-MB 및 미오글로빈 수치의 경우 심근 손상뿐만 아니라 골격근이 손상되었을 때에도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환자가 병원에 내원한 것은 길에서 넘어지면서 의식 저하, 편마비 증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지 급성 심근경색 때문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의료진은 골격근이 손상되어 CK, CK-MB, 미오글로빈 수치가 상승한 것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법원은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 심근효소 및 심전도 검사에서 더 나아가 반드시 심장초음파 내지 관상동맥조영술까지 시행했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심전도가 정상인 경우 심장초음파를 추가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급성 심근경색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상동맥조영술은 혈액학적 불안정이나 심인성 쇼크, 반복적 혹은 지속적인 흉통, 생명을 위협하는 부정맥이나 심정지, 심근경색의 기계적 합병증에 대한 의심, 급성 심부전, 심전도의 활동적인 변화가 있을 때 시행이 권고된다.
여기에다 환자는 급성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임상 증상인 흉통이 나타나지 않았고, 심전도 및 심근효소 검사 결과 임상 양상이 급성 심근경색을 진단할 수 있는 전형이 아니었다는 게 법원의 지적이다.
한편 유럽심장학회와 미국심장학회재단, 미국심장협회, 세계심장재단이 공동 발간한 심근경색의 보편적 정의 3차 개정판에 따르면 심근효소 수치의 증가 또는 감소를 전제로 △허혈성(혈액의 순환이 잘 되지 않는 상태) 증상 △허혈성 심장질환을 시사하는 심전도 변화 △혈관조영술이나 부검에서 발견된 관상동맥 내 혈전 중 어느 하나가 동반되는 경우 급성 심근경색으로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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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 [안기자 의료판례] - 급성심근경색 증상 의심 환자 퇴원 시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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