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증후군과 우울증으로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산책을 마치고, 병동으로 돌아오던 중 창문으로 올라가는 돌발행동으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 해당 병원은 손해배상 책임이 있을까?
사건의 개요
환자 E는 수년간 알코올 의존증후군, 중등도 우울에피소드 등으로 여러 차례 D 병원에 입원했으며, 몇 년 전에는 경찰의 도움으로 가족에 의해 다시 보호입원 절차를 거쳐 입원했다.
환자는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 산책 시간에 다른 환자들과 함께 병동에서 나와 4층에서 5층으로 오르는 계단참에 있는 창문(이 사건 창문)을 통해 밖으로 추락했다. 병원 바닥에서 발견된 환자는 다발성 외상으로 이틀 뒤 사망했다.
환자 E는 입원해 있던 병동은 폐쇄병동이고,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매일 1시간가량 지정된 장소에서 산책이 허용되었다.
환자는 일부 다른 환자들과 함께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병동으로 복귀하던 중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고 혼자 이 사건 창문으로 올라가 추락했다.
그러자 환자의 부모들은 D 병원 의료진의 과실, 창문의 설치 및 보존 상 하자로 인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환자 보호자와 병원의 주장
환자의 보호자인 원고들은 “환자는 알코올 의존증후군과 우울증을 앓고 있어 돌발행동이 우려되었음에도 의료진은 환자의 동선과 행동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라고 주장했다.
또 원고들은 “이 사건 창문은 안전장치 없이 쉽게 열릴 수 있어 설치 및 보존 상 하자가 있었고, 이로 인해 환자가 추락해 사망에 이르렀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D 병원은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를 고려할 때 자살 위험성을 예상하기 어려웠고, 산책 관리 과정에서도 과실이 없었다”면서 “이 사건 창문은 병원 건물의 용도와 환자의 상태에 비춰볼 때 특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이번 손해배상 소송의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 또는 채무 불이행 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
둘째, 이 사건 창문의 설치 및 보존 상 하자로 인한 공작물 책임 성립 여부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법원의 판단
1.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
알코올 의존증후군, 우울증 환자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자유로운 환경에서의 치료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의료진의 보호관찰의무는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가해 위험 방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한정된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보면 환청, 환시 등 증상은 있었지만 정신증이나 자살 시도 경험은 없었고, 우울도, 불안 수준도 대체로 양호한 상태였으며, 입원 생활에 큰 문제없이 참여하고 있었다.
D 병원은 금단증상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제외하고는 산책 등 야외활동을 실시해 왔고, 보호사 및 보안요원이 동행했다. 이 사건 당시에도 환자가 개별적으로 병동으로 복귀한 것일 뿐 의료진이 동행하지 않은 것이 과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법원은 “환자와 같이 산책 등 야외활동이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가능한 환자에 대해서까지 모든 동선과 행동을 감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절하다고 볼 수도 없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환자가 산책 후 복귀하는 과정에서 의료진이 동행하거나 모든 동선을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이런 점을 종합해 의료진이 환자의 자살 위험성을 예상하기 어려웠고, 산책 관리에도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2. 창문의 설치 및 보존 상 하자 여부
이 사건 창문은 4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위치하고 있었고,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이 이 계단을 통해 5층의 옥상으로 가는 비상구로 이동하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다.
이 사건 창문의 하단이 지면으로부터 약 158c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벽면의 핸드레일을 밟지 않는 한 추락할 위험성이 높지 않았다.
D 병원은 알코올 전문병원으로 환자 대부분이 중증정신질환자에 해당하지 않았으므로, 폐쇄병동 밖에 위치한 계단참의 창문까지 탈출이나 추락방지를 위한 별도의 잠금장치 또는 차단봉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
법원은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건 창문이 알코올 전문병원의 시설에 관한 기준을 위반했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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