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제36조는 의료기관이 준수해야 할 사항을 나열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는 일회용 의료기기 사용, 의료관련감염 예방 준수사항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의료법 시행규칙 제33조는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관리자의 준수사항으로 변질·오염·손상되었거나 유효기간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은 진열하거나 사용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례는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해 환자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입니다.
사건의 개요
환자는 빙판길에서 넘어져 흉부압박골절상을 입고 L의원에 입원해 1주일간 염증 완화와 순환개선제인 멜프로스 앰플을 5% 포도당용액에 혼합해 정맥주사 치료를 받았는데요.
그런데 환자는 오전 7시 경 오한과 근육통을 호소했고, 당일 오후 구급차로 N의료원 응급실에 가서 “기운이 없고, 새벽부터 일곱 차례 설사를 계속 했다”고 호소했습니다.
의료진은 혈압이 51/37mmHg로 측정되자 체액감소에 의한 쇼크로 진단하고 전문적인 응급치료를 위해 다시 O병원으로 전원시켰습니다.
O병원은 원인 불명의 패혈증으로 진단하고 항생제 투여, 수액요법,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부착 등의 다각적인 치료를 했지만 지속적으로 염증반응을 보이는 등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며칠 뒤 다발성 장기부전, 패혈증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L의원의 정맥주사제 준비 및 관리 상황
L의원은 주사제 정량을 측정하기 위한 주사기를 약제별로 구분해 사용하기는 했지만 주사제를 정량할 때마다 주사기를 교체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담당 간호사의 근무기간 중 특별히 오염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1회용 주사기를 지속적으로 사용해 왔는데요.
이 때문에 해당 자치단체는 L의원에서 1회용 주사기를 주사제의 정량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사용해 멜프로스 정맥주사를 투여받은 환자들이 공통의 경로를 통해 감염되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L의원은 보건소에 멜프로스 정맥주사를 투약받은 환자 중 4명에게서 패혈증 증세가 발생했다고 신고했고, 해당 보건소는 패혈증 발생 경위와 환자발생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해당 환자들의 진료기록부 등을 수거했습니다.
패혈증
패혈증은 미생물에 감염되어 전신에 심각한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폐렴, 신우신염, 뇌막염, 복막염 등의 감염증이 발생한 경우 원인 미생물이 혈액 안으로 침범해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심 법원의 판단
법원은 L의원의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환자 보호자들에게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은 변질, 오염, 손상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고, 의약품을 혼합할 때에는 반드시 1회용 주사기를 1회 사용한 후 폐기해 의약품의 변질, 오염, 손상을 미연에 방지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L의원은 이런 주의의무를 위반해 간호사가 전날 미리 멜프로스 앰플을 포도당용액에 혼합해 두면서 혼합용 1회용 주사기를 교체하지 않고 근무시간 중 지속적으로 사용해 온 과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해당 간호사의 주사기 재사용 과실과 환자의 패혈증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역시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이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환자는 입원 당시 패혈증 초기 증상인 빈호흡, 고열 또는 정신 착란 등의 증상을 호소하거나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호소한 바 없습니다.
2. 환자는 L의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매일 멜프로스 5% 포도당용액에 혼합용 정맥주사를 투여받았고, 그 외에 침습적인 처치를 받은 바 없습니다.
3. O병원에서 환자의 혈액배양검사 결과 그람음성 간균의 일종인 Raoultella planticola라는 병원체가 배양되었고, 이는 드물게나마 인체로 감염되어 패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균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해당 의원이 환자에게 발생한 패혈증이 의료상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에 기인한 것이라고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환자의 보호자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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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원 주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
한편 L의원은 환자가 입원할 당시 위염 및 상세불명의 복통으로 진단받았으므로 입원하기 이전부터 패혈증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환자가 L의원에 입원할 당시 위염과 복통 증세를 호소했다는 사정만으로 환자가 입원하기 이전부터 패혈증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판례번호: 2심 9629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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